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 인질사건 (문단 편집) === 기습적인 침입 === 당시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은 [[아키히토]] 덴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연회가 열릴 계획이었고 여기엔 페루 주재 한국 [[특명전권대사|대사]]였던 이원영 대사도 초청을 받아 현지시각 오후 7시 40분쯤 리마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으로 출발했다. 당초 파티 시작은 오후 6시였으나 소베로 페루수산장관과의 [[오징어]] 선단 입어권 교섭 논의가 길어진 까닭에 출발이 늦었다. 아울러 부부동반 초대였으나 수산장관과의 면담이 늦어져 다행히 부인은 동행하지 않았다. 이 대사가 탄 차는 20여분 뒤인 8시쯤 리마 시내 중심가인 산 이시드로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저에 도착했다. 이 대사가 파티가 열리는 대사관저 뒤뜰 정원에 들어서자 이미 수백 여명의 인사들이 [[칵테일]]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대사는 아오키 모리히사 일본 대사와 인사를 나눈 뒤 외국 사절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프란시스코 투델라 페루 외무장관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별안간 관저 밖에서 폭음과 함께 총성이 울려퍼지고 무장 [[게릴라]] 14명이 관저에 난입한 후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 우리는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당원이다. 해치지 않을 테니 지시를 따르라!"'''고 [[스페인어]]로 외쳤다. 순식간에 일본 대사관저에 모인 주요인사 700여 명이 인질로 전락했다. 즉각 [[페루군]]과 경찰이 응전에 나섰으나 1시간 30분이 지나도록 계속되던 교전은 밤 10시에 가까스로 멈췄다. 관저에 인질로 있던 각국 대사들이 확성기로 페루군에 교전중지를 요청한 까닭이었다. 게릴라군은 지역라디오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 "부녀자와 노약자를 석방하겠다"고 통보한 후 밤 10시부터 11시 사이 100여 명을 우선 석방했다. 이후 게릴라군은 인질들을 외교사절, 일본인, 페루인, 정부각료 등 각 방으로 분산 수용했고 외교사절들은 관저 2층에 위치한 대사관 침실에 수용되었다. 게릴라군은 삼엄한 경계태세로 들어갔다. [[파일:external/www.cnn.com/interior.pantel.lg.jpg]] 인질들의 모습 이튿날 아침 이 대사는 인질범들이 자신을 비롯한 대사들에 대한 전화통화를 허용하여 자신이 무사함을 알렸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인질범들이 독일과 캐나다, 그리스 대사를 일차로 석방했는데 인질범들이 페루 정부와 수감된 MRTA 수뇌부와 인질들을 맞바꾸는 협상을 중재하란 뜻에서 풀어준 것이었다. 이때 이 대사와 친분이 있던 앤서니 뱅상 캐나다 대사는 먼저 석방되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대사의 손을 꼭 쥐었다고 한다. 한편 페루 정부는 인질범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테러리스트와의 타협은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아예 협상에조차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대사관의 전기와 수도까지 단절시키면서 인질범들을 압박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인질범들은 "불응 시 30분마다 인질 1명씩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여기에 전기와 수도마저 단절되면서 대사관에 비치된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국제 적십자사 요원들이 생수와 음료수, 그리고 간단한 식량을 대사관 안으로 반입했으나 그것마저도 양이 부족했던 관계로 식빵 하나를 두 명이 나눠먹어야 했을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